목록순간을 붙잡는 기록의 힘 (12)
소소한 것이 매일을 풍요롭게

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 내포된 의미보다는 단어 하나하나가 와 닿고 좋은 느낌이다. 너무 아름답고, 선망하는 대상이라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더러워질까봐 걱정하는 마음. 흔들리며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져 바라본 하늘엔 눈물같이 빛나는 별이 보인다. 숙취마저 헹구어 버릴 것 같은 별빛에 한탄이 나온다. 저 찬란함마저 동경하지 못하면 내가 무엇으로 가난할 수 있을까. 읽고 있자..

먼 길 윤석중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 아빠와 아기의 귀여운 모습이 그려지는 시. 눈에 꿀 떨어지는 아빠와 생글생글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좇는 아가가 눈에 선하다. 아이구, 저걸 두고 어떻게 출근해 하면서 슬슬 웃는 아빠가 보인다. 가까운 길도 멀게 느껴지는 건 귀여운 자식을 두고 떠나는 걸음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는 마음 때문이겠지. 마음이 떨어지지 않아 느려지는 걸음은 자식이 아기때 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떠날 때도 행여나 내가 마음에 짐이었을까봐, 평생 후회하지 말라고 큰외삼촌의 일정을 기다렸다가 새벽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떨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혼을 붙잡고 있는 건..

혼자서.2 나태주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라 ** 나태주 시인은 꽃을 좋아하고 김용택 시인은 달을 좋아한다 난 둘 다 좋아 :) 이걸 읽었을 때 처음 일을 시작한다고 서울로 왔을 때가 생각났다 막내라서 서럽고 선배들은 다 집에 가는데 혼자 새벽 회사에 남아 파일 올리느라고 밤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재밌어하는 일 하는데 불만 갖지 말자고 되뇌어도 학기중에 취업한지라 누구도 나의 고충을 공감해주는 이 없어 외로웠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처럼 여전히 막내들을 보면 내 20대 초반이 생각나서 마음이..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나의 최애 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곧 제목.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주시다니요.. 라는 말에 감격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감동의 물결이 치는 게 느껴진다. 그 다음 구절은 아이 같은 모습이 보인다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달빛에 나한테 전화하는 당신 때문에 신날 뿐더러 심지어 근사한 밤이 되었어요 저 두 줄만 하더라도 상대의 전..

갈등 김광림 빚 탄로가 난 아내를 데불고 고속버스 온천으로 간다 십팔 년 만에 새삼 돌아보는 아내 수척한 강산이여 그동안 내 자식들을 등꽃처럼 매달아 놓고 배배 꼬인 줄기 까칠한 아내여 헤어지자고 나선 마음 위에 덩굴처럼 얽혀드는 아내의 손발 싸늘한 인연이여 허탕을 치면 바라보라고 하늘이 거기 걸려 있다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빚 갚으러 ** 지금 읽고 있는 시집이 나태주 시인의 첨언이 들어간 책인데, 시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됐었는데 내용을 보니 마음이 참 짠해진다.갈등이란 칡과 등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나무가 같은 넝쿨나무인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틀고 올라가는 성질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18년을 함께 산 부부, 아내가 진 빚이 들통나서 헤어지자고 떠난 온천 여행 가만히 들여다 본 아내에게는..

어떤 시리즈 물이든 마의 고비는 시즌 2라고 생각한다. 1이 재밌으면 재밌었을수록 2는 이미 높은 기대치를 충족 시켜야할 것이고 사실상 1이 재미 없으면 시즌2는 나오기 힘드니까. 그래서 시즌2가 성공한다면 그만큼 짜임새 있는 구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긴 호흡으로 구성했을 가능성이 높고 어디에서 시즌1을 마무리해서 궁금증을 자아낼지 시즌2에서 어떤 떡밥을 회수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계산이 잘 맞아 떨어져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D.P2는 올해 본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었고 감독이 누군지 찾아볼 정도였다. 보면서 느낀 하나는, 오디션을 정말 열심히 본 것 같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 처돌이까지는 아니여서 (가늘고 길게, 얕고 넓게가 나의 신조) 다른데서 이렇게 캐스팅 한 적이 ..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를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글에서 그림이 보이고, 영상이 보이는 걸 좋아한다. 그만큼 구체적인 묘사가 있거나 누구든 겪어봤고, 봤거나 들었거나 해서 공감이 되다 못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글을 좋아한다. 이 시를 딱 읽었을 때 펼쳐지는 건 주황색 포장마차에 쪼롬이 ..

요즘처럼 마음이 심란할때가 없었다. 몸은 몸대로 지쳐떨어지기 직전이고, 마음도 이미 너덜너덜해 주말 저녁이면 자투리 천 잇듯 기워야만 아침 알람에 일어날 수 있었다. 어디 하나 마음 둘 데 없어 ‘고독하구만’ 짤을 한 번씩 앨범에서 볼 정도였다. 속으로는 성대모사를 거의 똑같이 하는데, 입 밖으로 꺼내기가 민망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절친’으로 저장된 나의 친구가, 뜬금없이 선물을 보내왔다. 독립 서적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다가, 이 책을 읽으며 네 생각이 많이 나 보낸다면서. 독립 서적이라는 자체도 신기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의 어디가 생각났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퇴근 후 받아본 택배 속 책은, 제목부터가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와 여전히 속으로는 화해하지 못했으면서 전화하며, 본가에 내려가서 대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