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붙잡는 기록의 힘

오늘의 시 - 먼 길

주랑아 2023. 8. 14. 21:20

먼 길

   윤석중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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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기의 귀여운 모습이 그려지는 시.
눈에 꿀 떨어지는 아빠와 생글생글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좇는
아가가 눈에 선하다. 아이구, 저걸 두고 어떻게 출근해 하면서 슬슬 웃는 아빠가 보인다.
가까운 길도 멀게 느껴지는 건 귀여운 자식을 두고 떠나는 걸음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는 마음 때문이겠지.

마음이 떨어지지 않아 느려지는 걸음은 자식이 아기때 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떠날 때도 행여나 내가 마음에 짐이었을까봐, 평생 후회하지 말라고
큰외삼촌의 일정을 기다렸다가 새벽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떨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혼을 붙잡고 있는 건 같은 맥락이었을것이라 생각이 든다.
유독 머리가 멍해질만큼 시린 헤어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