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 갈등
갈등
김광림
빚 탄로가 난 아내를 데불고
고속버스
온천으로 간다
십팔 년 만에 새삼 돌아보는 아내
수척한 강산이여
그동안
내 자식들을
등꽃처럼 매달아 놓고
배배 꼬인 줄기
까칠한 아내여
헤어지자고 나선 마음 위에
덩굴처럼 얽혀드는
아내의 손발
싸늘한 인연이여
허탕을 치면
바라보라고
하늘이
거기 걸려 있다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빚 갚으러
**
지금 읽고 있는 시집이 나태주 시인의 첨언이 들어간 책인데,
시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됐었는데 내용을 보니 마음이 참 짠해진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나무가 같은 넝쿨나무인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틀고 올라가는 성질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18년을 함께 산 부부, 아내가 진 빚이 들통나서 헤어지자고 떠난 온천 여행
가만히 들여다 본 아내에게는 주렁주렁 자식들이 남긴 까칠한 피부와 수척한 행색.
복잡한 마음의 남편은 허탕을 친 기분으로 하늘만 바라본다.
같이 빚을 갚기로 다짐하게 되는 가난한 남편의 마음.
요즘 이런 일이 있으면 커뮤니티에 서로 욕하기 위한 사연으로 딱일 것 같다.
아내가, 남편이 빚을 졌는데 숨겼어요. 헤어져야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땐 당연히 헤어져야죠, 숨긴 것도 죄입니다부터 시작해
누가 잘못이 크냐 어쩌냐, 왈가왈부하기 좋은 주제 아닌가
하지만 누구도 단면만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부부관계, 연인관계가 아닐까 싶다.
어쩌다가 진 빚인지, 얼만큼의 빚인지 모르겠지만서도
18년을 함께 살고 그동안의 산전수전을 함께 겪으며 넝쿨처럼 얽힌 사이에
헤어짐은 쉽지 않다. 설사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같이 쌓아온 재산 같은 것은 빈 유리병에 차곡차곡 유자를 넣어 가는 것이라면
같이 지낸 시간은 빈틈마다 설탕을 채워넣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유리병 가득 유자청이 생기듯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 아닐까
상대의 허물을 발견했을때, 성급하게 비난하기보다 존재 자체를 유심히 다시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소인배인 나로서는 남편이 나 몰래 빚지는 건 솔직히 용서 안될 것 같긴하지만..ㅎㅎ